청와대-백악관 X파일(84) 전두환 정권, 김대중 김영삼 초청한 미대사관에 "초청 취소하라" 압력
청와대-백악관 X파일(84) 전두환 정권, 김대중 김영삼 초청한 미대사관에 "초청 취소하라" 압력
  • 특별취재팀
  • 기사승인 2020-12-08 08:35:15
  • 최종수정 2020.12.0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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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백악관 x파일
청와대 백악관 x파일

미국 정부와 한국 정부의 가교 역할을 맡았던 주한 미국대사들이 가장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던 문제는 야권과의 관계성이었다.

한국의 민주화를 지원하되, 한반도의 안정을 흐트러뜨리면 안된다는 미국 정부의 입장을 대변해야 하는 특성상 주한 미국대사는 재야 인사들과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의 묘한 역학 관계 속에서 활동해야 했다.

어떤 경우는 미 야당의 집중 공격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미 하원 외교위원회 아시아태평양소위 위원장인 스티븐 솔라즈 의원의 경우 1986년  봄 한국을 방문, 전두환 정권에게 ‘김대중(DJ)에게 소홀히 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그는 이어 미대사관을 방문, 리처드 워커 대사에게 “왜 DJ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느냐”면서 의아해했다.

솔라즈 의원은 미국으로 돌아가 모튼 앰브로위츠 국무차관에게 “워커 대사가 DJ와의 면담을 꺼리는 것을 크게 문제 삼을 것”이라고 통보했다. 그의 공세에는 존 커리 상원의원과 뉴욕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등 언론들도 동참했다.

워커 대사는 국무부에 다음과 같이 가시 돋친 답신을 보냈다.

- 나는 적절한 시기라고 판단되면 DJ를 만날 예정이다.

- 나는 이민우 신민당 총재, 이만섭 국민당 총재 등 야당 지도자, DJ, YS 측의 대표들을 수시로 관저로 초총해 접대했다.

- 김대중 씨는 내게 한번도 만나자고 요청한 적이 없으며, 내가 자신의 동교동 자택으로 찾아가 경의를 표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등 황제처럼 행동한다.

- DJ는 여전히 정치 풍토 쇄신을 위한 특별조치법에 따라 정치 활동이 금지된 상태다.

- 내가 서울에 부임했을 때 그는 감옥에 있었으며, 나는 그가 1년6개월 후 미국에 갈 수 있도록 시간과 정치적 자산을 쏟아 부었다.

- 나는 김씨의 부인인 이희호 여사를 만난 적이 있으며, 당시 그는 다른 사람들도 있는 자리에서 DJ가 정치에 더 이상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 김씨는 2월 귀국하자마자 우리와의 약속을 저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굽실거리며 김씨를 찾아가야 하는가.

- 1985년 5월 학생들의 서울 미문화원 점거 농성 사태 당시 나는 DJ본부에 김씨가 나서서 학생들을 설득하라고 제의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농성 사태는 미국의 문제’라고 응답했다. 그는 학생들이 농성을 풀 계획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학생들에게 메시지를 보냈고, 이 때문에 농성 해제가 하루 지연됐다.

워커는 국무부 답신에서 ‘미국 정부는 DJ 편의에 따라, 대사 면담 압력을 넣은 DJ 지지자들의 캠페인에 말려들어서는 안되며, 미국 정부의 이익에 부합할 때면 미대사가 기꺼이 DJ를 만날 수 있다는 점을 명백히 밝혀둘 필요가 있다’고 적시했다.

주한미대사관과 DJ측의 갈등을 해소할 계기가 등장했다.

야권 지도자였던 김영삼, 김대중과 리처드 워커 주한미대사. 현대사의 페이지를 장식했던 이들은 모두 고인이 됐다.
야권 지도자였던 김영삼, 김대중과 리처드 워커 주한미대사. (모두 타계). 이들은 군사정권에 맞서 현대사의 페이지를 장식했다. [연합뉴스]

미국 독립기념일(7월 4일)이 다가왔던 것. 주한 미대사관은 이 행사에 예년처럼 1,000명의 손님을 초대하면서 국무부와 상의해 이행사에 김영삼, 김대중을 포함한 한국 야당 인사들을 공식 초청키로 했다.

초청정은 6월말 일제히 발송됐다.

미국이 예상했던대로 DJ는 자신도 초청을 받았다고 언론에 재빨리 알렸다.

그러나 파장은 우려했던 바 보다 훨씬 심각했다.

한국 정부는 즉각적이고도 강경하게 반응했다. DJ가 초청을 큰 정치적 이슈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초청을 취소할 것을 요구했다.

미국 측이 한국 정부와 먼저 상의하지 않은 데 대해 청와대, 그리고 전두환 자신이 격분했다.

워커 대사는 이원경 외무부장관, 국가안전기획부장 장세동, 그리고 노신영 국무총리에게 이것은 사교 모임에 불과하다고 알렸다.

대사는 한국 외무부장관에게 보낸 서신에서 “우리가 초청을 취소하도록 강요받는다면 명분없는 일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나아가 “우리는 야당이 7월 4일의 사교 모임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못하도록 할 것이며, 기자들의 참석을 불허하고 사진도 직접 찍을 것”이라며 한국 정부를 안심시켰다.

마침내 청와대도 물러섰으며 이 행사는 일부 사람들이 바랬던 바와 달리 언론의 이벤트가 되지 않고 조용히 치러졌다.

미 대사관 독립기념일 행사에 참석함으로써 김영삼, 김대중은 글로벌 무대에서 정계에 복귀한 셈이 됐다.

[위키리크스한국=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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