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줌인] '흑해의 보석' 크림반도...러시아-우크라이나 200년의 악연
[우크라 줌인] '흑해의 보석' 크림반도...러시아-우크라이나 200년의 악연
  • 유 진 기자
  • 승인 2022.08.14 06:33
  • 수정 2022.08.14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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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의 보석' 크림반도와 러시아군. /AP=연합뉴스
'흑해의 보석' 크림반도와 러시아군. /AP=연합뉴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크림반도가 비상한 주목을 끌고 있다.

‘흑해의 보석’이라 불리는 그 반도는 러시아와 소련 지도자들에게 오랫동안 갈망의 대상이었다.

크림 반도는 러시아 차리나 캐서린 대제가 1783년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크림 반도를 합병한 이래로 러시아 지도자들에게 소중한 보물로 여겨져왔다.

이 반도는 러시아에게 흑해 뿐만 아니라 더 큰 지중해 지역에서도 군사적 영향력을 행사케 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1856년 파리 조약에 서명할 당시 크림 전쟁의 패배를 받아들여 세바스토폴의 해군 기지를 해체하는 데 동의했다. 흑해에서 군사적 위협으로 러시아를 제거하려는 영국, 프랑스 및 동맹국들이 요구한 조건이었다. 하지만 그 양보는 오래가지 못했다.

러시아는 1870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동안 세바스토폴을 재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후 러시아 지도자들은 크림반도로 다시 돌아왔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이 크림반도를 폭격한 후, 세바스토폴의 많은 부분이 폐허가 됐다. 그러나 조셉 스탈린은 이 항구를 ‘영웅의 도시’로 선언하고 이전의 신고전주의 미를 회복시키라고 명령했다.

1942년 6월 러시아 흑해 함대의 전함이 세바스토폴 인근 독일과 루마니아 진지를 포격했다. /히스토리
1942년 6월 러시아 흑해 함대의 전함이 세바스토폴 인근 독일과 루마니아 진지를 포격했다. /히스토리

소련이 붕괴된 후인 1997년 우크라이나와의 조약으로 러시아는 흑해 함대를 세바스토폴에 보유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2014년, 러시아는 옛 소련공화국의 영토를 보전한다는 명목 하에 불법적으로 우크라이나로부터 크림 반도를 점령했다. 200만명의 주민들을 이주시키고 국가의 인프라를 파괴하는 전쟁을 일으켰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크림 반도가 대부분 러시아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하며 침략을 정당화했다.

크림 반도는 카트린 대제가 합병할 때까지 이 곳은 수백년간 오스만 제국 치하에서 살았던 투르크어족 타타르족의 고향이었다. 하지만 1944년, 스탈린은 약 20만 타타르인들을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로 추방하고, 이슬람 민족을 소련에 반역자로 낙인찍었다. 러시아는 대신 자국민들을 이주시켜 노동력을 보충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조상의 고향으로 돌아온 타타르족은 점점 더 공격적인 러시아의 존재에 의해 다시 쫓겨날 수 밖에 없었다.

휴먼라이츠워치 보고서에 따르면 남아 있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러시아 당국의 괴롭힘, 체포, 투옥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특히 극단주의와 정치활동의 혐의를 받고 있다.

스탈린이 사망한 후, 소련 총리 니키타 흐루시초프는 ‘러시아 국민을 대표하는 고귀한 행위’라는 조치로 크림반도를 우크라이나로 옮겼다. 이는 1954년 소련 최고 입법기구인 소련 최고위원회의에서 승인됐다.

2014년 3월 6일 크림반도 심페로폴 인근 페레베발네에 있는 우크라이나 군기지 밖에서 러시아 준군사조직들이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의 대치상황의 일환으로 경비를 서고 있다. /히스토리
크림반도 심페로폴 인근 페레베발네에 있는 우크라이나 군기지 밖에서 러시아군이 경비를 서고 있다. /히스토리

소련의 정치인 샤로프 라시도프는 "동지들...크림공화국의 우크라이나로의 이주가 놀라운 날에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것은 민족 분쟁도 없고 국가적인 차이도 없는, 모든 소련 사람들의 삶이 모든 인류의 평화와 행복을 명분으로 하는 평화로운 건설적인 분위기 속에서 우리나라에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또 다른 공산당 지도자인 오토 윌 쿠시넨도 거들었다.

“동지들! 우리나라에서만 러시아 국민과 같은 위대한 사람들이 아무런 망설임 없이 가치 있는 주들 중 하나를 다른 형제들에게 관대하게 양도할 수 있습니다."

통합과 협력에 대한 모든 주장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문서들은 흐루시초프의 움직임이 호의보다는 정치적 계산에 의해 동기에 따른 것이었다. 1953년 스탈린의 죽음 이후 나타난 권력 투쟁에서 우크라이나 지도부를 달래고 그의 위치를 확고히 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었다.

2000년대 들어 감행된 푸틴의 크림 병합에 대해 러시아 친푸틴 세력들은 “세계 최고의 문명 중 하나인 러시아의 영광시대로 되돌리려는 시도”라고 주장한다.
우크라이나 관리들과 분석가들은 “리버티에서 상당한 인구 변화가 진행되고 있으며, 러시아인들이 대거 유입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공무원인 보리스 바빈은 "시베리아에서 온 많은 사람들을 포함해 수십만 명이 러시아에서 밀려온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러시아는 크림반도에 그치지 않고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도네츠크·루한스크) 지역과 남부 도시 헤르손 등을 추가 병합한다는 전략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러시아가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 루네츠크인민공화국(LPR)처럼 유사 국가인 헤르손인민공화국을 설립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가짜’ 주민투표를 통해 정당성을 확보하는 등 민주주의처럼 겉포장해 병합하겠다는 복안이다.

2014년 5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9일 2차 세계대전 승전 기념일을 맞아 크림반도 세바스토폴항을 방문해 연설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2014년 5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9일 2차 세계대전 승전 기념일을 맞아 크림반도 세바스토폴항을 방문해 연설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주민투표는 러시아가 2014년 크림반도를 병합했을 때 사용했던 방법으로, 이번에도 당시와 마찬가지로 주민투표를 조작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크림반도 병합 당시 주민투표에선 96% 이상이 찬성표였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 병합 이후 친러시아 분리주의자들은 도네스크와 루한스크를 장악한 뒤 자칭 ‘공화국’을 수립했다. 러시아는 지난 2월 DPR과 LPR의 독립을 승인하고 이들 지역을 보호하기 위한 ‘특별군사작전’을 명분으로 내세우며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헤르손은 침공 초기부터 러시아군에게 포위돼 공격을 받다가 점령당했다.

러시아는 이 계획을 위해 (해당 지역의) 시장, 공무원, 언론인, 학교 임원 및 활동가들을 납치하고 있으며 이들 지역에서 러시아 학교 커리큘럼을 시행하고 (러시아 화폐인) 루블화를 사용하도록 강요할 계획이다. 최근엔 인터넷과 휴대전화 등 통신도 차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위키리크스한국= 유 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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