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 시대] 아바타가 성(性)을 속인다면?
[메타버스 시대] 아바타가 성(性)을 속인다면?
  • 정숭호 칼럼
  • 기사승인 2021-08-17 07:53:38
  • 최종수정 2021.08.17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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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TV '아바타 노래경연 대회' 계기로 보는 가상세계와 아바타
노래하는 아바타. /폭스 인스타그램 캡처
노래하는 아바타. /폭스 인스타그램 캡처

오는 9월 22일 아바타들의 노래경연이 시작된다. 미국 폭스TV가 새로 시작하는 이 프로그램은 아바타 노래경연으로는 인류 최초다.

폭스TV는 2019년 2월부터 한국 TV 예능인 ‘복면가왕’의 형식을 빌린 ‘Masked Singer’를 방영해왔다. ‘Masked Singer’는 처음부터 인기를 끌어 ‘시즌 6’로 들어섰다. 폭스는 외모 직업 나이 인기 등 모든 ‘계급’을 떼고 오직 목소리로만 대결토록 한 이 프로그램이 시청자들의 관심을 끈다는 것을 간파했다. 폭스는 아예 실물 인간 대신 아바타를 출연시켜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극대화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저 아바타의 주인공은 누구일까?”라는 호기심이다.

폭스는 아바타 노래경연 프로그램 타이틀을 ‘나 아닌 나(Alter Ego)’라고 붙였다. 폭스는 이름을 잘 붙였다. 메타버스는 아바타의 세상이어서다. ‘나 아닌 나’인 나의 아바타는 나를 대신해 가상공간인 메타버스에서 살게 된다. 아바타들은 메타버스에서 만나 교류하고 즐긴다. 아바타들이 노래하는 폭스의 새 프로그램도 메타버스인 셈이다.

아바타의 주인은 메타버스 밖에서 자신의 아바타를 조종한다.

다른 아바타를 만났을 때 “저 아바타가 멋있군. 저 아바타가 나와 취향이 같군”, 이런 판단이 서면 나의 아바타를 내 마음에 드는 아바타의 마음에 들도록 꾸민다. 내면은 관계가 없다. 오직 외모다. 실물인간도 한두 번 만나서는, 아니 평생을 함께 해도 내면 파악이 어려운데 아바타는 말할 것도 없다.

내면을 보일 수 없으니 겉모습, 겉치장으로 관심을 끌어야 한다. 메타버스 안에서 옷, 신발, 시계, 모자 같은 아이템들이 팔리는 이유다. 구찌나 루이비통, 나이키 등등의 명품, 고급품이 메타버스에 들어가서 장사를 하는 이유이다.

산스크리트어인 아바타(Avatar)는 힌두교의 신 이름이다.

‘Ava’는 ‘아래’, ‘tar’는 ‘건너다’라 뜻으로 ‘인간세계로 내려온 신’이라고 한다. 하지만 2017년 대선토론에서 국민의 당 후보 안철수가 더불어민주당 후보 문재인에게 “내가 MB의 아바타입니까?”라고 말했을 정도로 아바타는 범상한 존재가 됐다. 어떤 존재의 분신, 혹은 그 존재의 꼭두각시를 아바타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나의 아바타는 나의 분신이며 나의 꼭두각시이다.

아바타는 2009년 개봉한 미국 영화 ‘아바타’로 그 존재와 이름을 널리 알렸지만 사실 아바타는 메타버스의 세계를 그린 최초의 소설 ‘스노 플래시’에 먼저 등장했다. 1992년에 나온 ‘스노 플래시’의 작가는 닐 스티븐슨이다. 과학자 집안에서 태어나 과학은 물론 종교와 언어의 생성 소멸에 관심이 컸던 그는 ‘스노 플래시’를 쓰면서 ‘메타버스’를 처음으로 창조, 소설의 무대로 삼았다. 그 가상의 세계, 메타버스의 주민들을 아바타라고 불렀다.

스티븐슨은 아바타를 등장시키면서 고민이 깊었던 것 같다. 그는 소설에서 아바타가 “현실 세계의 주인보다 크면 안 된다”고 못 박았다. “아바타는 메타버스에 들어온 사람들이 서로 의사소통을 하고자 만든 가짜 몸뚱이다. 아바타는 장비가 허락하기만 하면 원하는 대로 아무렇게나 만들 수 있다.

못생긴 사람도 아바타는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 방금 잠자리에서 나온 사람이라도 아바타는 여전히 아름다운 옷을 차려 입고 제대로 화장한 모습으로 꾸며 놓을 수 있다. 메타버스에서는 고릴라나 용, 말하는 거대한 남근도 될 수 있다”라고까지 상상한 스티븐슨은 그러나 “키가 1킬로미터도 훨씬 넘는 아바타가 돌아다니는 것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레디플레이어미(Ready Player Me)의 아바타들 / Wolf3D
레디플레이어미(Ready Player Me)의 아바타들. / Wolf3D

스티븐슨은 또 메타버스에서 사고나 싸움으로 사망한 아바타의 처리에도 관심을 가졌다. 제때 치우지 않은 사이 주인이 아바타를 새로 만들면 메타버스에 같은 사람의 아바타가 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스티븐슨은 아바타가 죽으면 사체 처리 전문 아바타가 자동으로 나타나도록 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죽은 아바타의 주인은 일정 시간이 지나야 다시 아바타를 만들 수 있도록 했다.

스필버그가 2018년 영화로 만들기도 한 ‘레디 플레이어 원’은 스티븐슨의 소설에서 영감을 얻은 동명의 메타버스 소설이 원작이다. 어니스트 클라인이 2015년에 쓴 이 소설은 ‘스노크래시’가 스티븐슨이 과할 정도로 쏟아 넣은 과학적, 종교적, 언어학적 지식 때문에 현학적인 느낌을 주는 것과는 달리 1980년대 대중문화에 대한 잡식(雜識)을 바탕에 깐 언더독(사회적 약자)의 성공, 청년 주인공들의 순수한 사랑, 악과의 대결 같은 것이 재미있게 짜여 있어서 대중적 인기가 매우 높았다. 

또 스티븐슨의 시대보다 발달한 21세기 IT기술을 기반으로 상상한 소설이라 친밀도도 높은 편이다. 페이스북의 ‘주 사장’, 저커버그는 ‘레디 플레이어 원’을 모델로 하는 메타버스를 만들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레디 플레이어 원’에는 아바타에 대한 제한은 없다. 대신 이런 말이 있다.

“사이버 공간에서 우리들의 모습은 아바타를 통해 걸러져서 나와. 외모든 목소리든 마음대로 바꿀 수 있지. 오아시스는 우리가 원하는 사람처럼 만들어줘. 그래서 사람들이 여기에 홀딱 빠져 헤어 나오지를 못하는 거야.” 여기서 보듯, 남자가 여자로, 노인이 젊은이가 될 수 있으며, 피부색도 바꿀 수 있는 게 아바타의 세계인 것이다. 아바타로 만나 사귄 여자가 실제로는 남자일 수 있는 것이다. (오아시스는 소설 속 메타버스의 이름이다.)

한국의 대표적 메타버스인 네이버의 ‘제페토’는 주민등록번호로 가입하게 돼 있어 이런 변신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자신의 정체성, 특히 성적 정체성을 바꿔보려는 사람들이 자기주장을 내세우는 시대다. 메타버스에서 아바타에 제한을 두는 게 옳은가 하는 문제가 조만간 제기될 것이다.

메타버스의 세계에서는 이런 문제 말고도 많은 문제-기존 제도 및 질서와 부딪히는 문제가 계속 제기 될 것이다. 폭스가 ‘나 아닌 나’에 출연하는 아바타에게 정체성 변경을 어느 정도 허용할 것인지 궁금하다.

/ 메타버스인문경영연구원 이사장 (전 한국일보 경제부장, 경제담당 부국장)

11trout@naver.com